◀ 앵 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해
'푸른 눈의 시민군'으로 불린
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 씨.
평생을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헌신한
그가 첫 한국 땅을 밟고 생활한 곳은
월출산 아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제2의 고향, 영암을 다시 찾은 그를
허연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1970년대 후반.
함께 일하고, 밥을 먹고,
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냈던 20대 청년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일흔이 훌쩍 넘어 다시 만났습니다.
세월이 담긴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눈을 떼지 못합니다.
◀ SYNC ▶
"그때 카메라를 누가 이렇게 찍었지?"
"내가."
"사진을 맨날 찍고 다녔지.."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장발의 미국인,
한국에선 '임대운'이라고 불리던
데이비드 돌린저씨입니다.
1980년 5.18 당시 광주로 가 시민군으로
참여하기 전까지 이곳 영암보건소에서
2년 간 결핵환자를 돌봤습니다.
◀ INT ▶ 이경자
"얼굴이 그대로더라고요. 같이 근무한 것, 또 뭐 먹으러 간 것..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줬는지 몰랐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 INT ▶ 정옥희
"잊혀졌는데 되새겨보니까 너무 행복한 순간 같은데요. 그때 굉장히 인상이 좋았어요, 순하시고. 뭐든 솔선수범 하는 것 같고.."
영암에서의 생활을 각별하게 여겼던 그는
앞서 저서 '나의 이름은 임대운'에서도
자신의 유골의 일부를 월출산에
묻어주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5.18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그가
이곳 영암에서 군민들을 만난 이유입니다.
◀ INT ▶ 데이비드 돌린저
"영암 사람들이 진심으로 저를 지금의 저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받아들여주신 덕분에 제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광주로 돌아가게 된 것도
영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st-up ▶
"월출산 자락 아래 동료들과 함께 돌린저 씨는 47년 만에 그리웠던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평생을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선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비상계엄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끊임없이 정부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INT ▶ 데이비드 돌린저
"한국 국민들은 계속해서 정부의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말해야 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억압에 굴하지 않고 서로를 지켜야 합니다."
또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역사 속 희생과 고통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국민들이 연대해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MBC뉴스 허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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