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어제 작고한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80년 광주의
배후 조정자'로 옥고를 치뤘습니다
광주와 특별하게 인연이 깊었던 리영희 선생은
죽어서도 광주에 묻히길 바랬습니다.
김낙곤 기잡니다.
◀END▶
지난 2005년 리영희 선생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상 채록 3부작 제작에 흔쾌히 동의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광주를 찾습니다.
'광주'와 인연을 묻는 첫 질문에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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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기자 출신인
리영희 선생과 광주의 인연은
80년 1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광주 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때 부텁니다.
월남파병 문제를 파헤친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저서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강단으로 복직도 잠시
이번에는 '광주 항쟁'의 배후자로 조작돼
두번째 옥고를 치룹니다.
◀SYN▶
세번째 인연은 80년 광주 항쟁에
미국이 책임이 없다는 제임스 릴리
미국 대사의 글을 반박하면 섭니다.
반박에 재반박을 하고 미국대사를 상대로
공개토론까지 제안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중국 혁명,
박정희 군사정권과 80년 5.18문제등
진실의 펜이 왜곡되는 야만의 시대에
리영희 선생의 글은 빛을 발했습니다.
◀SYN▶
진실을 썼다는 이유로
7번 기소에 5번 구속된 리영희 선생!
평안북도 출신으로
광주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그가
마지막 휴식처로 택한 곳은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도시 광주 !
5.18 국립 묘지였습니다.
◀SYN▶
엠비시 뉴스 김낙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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