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자의
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과의 소송이 시작된 지
이제 12년입니다
비록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한일 과거사를 바로 잡기 위한 시민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수인 기자
◀VCR▶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광주와 전남지역 150여명의 어린 소녀들이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 군수공장의
강제 노동에 동원됐습니다.
이 가운데 6명은 당시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뒤 40여년이 흐른 1988년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에 의해
근로정신대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1절 80주년인 1999년 3월 1일
일본의 지원단체와 태평양전쟁 유족회는
일본 법원에 근로정신대 피해 배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INT▶ 이금주 태평양전쟁유족회 회장
9년 넘게 이어진 법정 싸움은 2008년 11월
최종 기각으로 끝을 맺고 맙니다.
- 화면 전환 -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근로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에 책임을 묻는 거센 물결로 이어졌습니다.
13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서명운동,
208일동안 이어진 1인 시위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피해 보상을 위한 협상장으로 끌어냈습니다.
◀INT▶ 김희용 시민모임 대표
그리고 다시 3.1절을 맞은 지금
전범기업과의 협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10만인 모금 운동이 또 한번의 거센 불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엠비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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