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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환경운동역사에서
목포출신 고 서한태 박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거 1주기를 맞아 시민 추모의 밤 행사가
목포에서 열렸습니다.
장용기기자가 서 박사의 행적을 되짚어
봤습니다.
◀END▶
영산강은 50대 나이의 평범한 방사선과 의사 서한태 박사를 환경운동가, 시민운동가로
탄생시켰습니다.
1983년 영산강 상류에 하루 2천7백톤의
폐수를 방류하는 대기업 소주회사의 주정공장이
추진됐습니다.
당시 영산호 하구둑이 만들어진 영산강은
식수난에 시달리는 목포시의 소중한
상수원이었습니다.
서한태박사는 라이온스, 와이즈맨 등
지역 봉사단체를 설득하는 범시민운동으로
6개월 만에 주정공장 저지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이 운동은 군부독재 엄혹한 시절
지역 시민운동의 출발이었고
전국 환경운동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INT▶ 고 서한태박사 (1998년)
"공해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예상업소를
사전에 개인이 아닌 전체 주민운동을 통해서
추방했던 것은 세계적인 성공사례예요"
서 박사는 계속해서 삼학도와 유달산보존
운동 물관리 일원화 등 지역환경 시민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INT▶ 김창용고문 (목포환경운동연합)
"앞으로 계속 사는 우리에게 표본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만일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꼭 이루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그것이 결정이 됐고.."
물문제 해결 시민회의 결성 등 생활 속의
실천운동을 강조한 서 박사는 1997년
목포환경운동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INT▶천정배 국회의원(서한태박사 사위)
" 많은 동지들과 함께 열심히 하셨던
그런 노력이 앞으로 목포에서, 전국에서
잘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지난해 91살의 노환으로 생을 마감한
서한태 박사는 여전히 환경운동가,
시민운동가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mbc 뉴스 장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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