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열두 번째 봄을 맞았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멈춘 시간을 견디며
다시 살아내기 위해
그림을 그려온 한 엄마를
허연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거친 물감 위로
꽃망울이 피어나듯 번집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12년 전 봄,
학교 앞 벚꽃길을 걸으며
"다음 봄엔 제대로 꽃놀이를 가자"고
딸과 약속했던 엄마.
끝내 지켜지지 못한 약속은
이제 한 점 한 점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 INT ▶ 정정희 / 단원고 2학년 김다영 학생 어머니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아름답거나 좋은 것만이 아니고 나 같은 슬픈 감정이나 아픈 감정도 표현해야 된다는 그런 것들을.."
세월호 참사로 막내딸 다영 양을 잃은 뒤
정정희 씨의 삶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바다를 차마 볼 수 없었던 10년.
섬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배조차 탈 수 없었습니다.
◀ INT ▶ 정정희 / 단원고 2학년 김다영 학생 어머니
"팽목항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 그때 바라보던 회색빛 바다가 뭐냐면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고.."
그 사이 두 아들은 엄마 곁을 지켰고,
남편은 다른 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붓을 다시 든 건
참사 이후 5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 INT ▶ 김현동 / 단원고 2학년 김다영 학생 아버지
"아빠가 뭐 하든 엄마가 뭐 하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런 딸이었거든요. 이런 모습을 보면은 아마 무척 좋아하지 않을까 온 친구들 다 데리고 와 갖고.."
그리고 지난해,
세월호 선체가 보이는
고향 달리도에 작업실을 차렸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바다를 다시 마주한 겁니다.
◀ INT ▶ 정정희 / 단원고 2학년 김다영 학생 어머니
"돌도 많이 던지고 그쪽으로.. 내 인생에서 건널 수 없는, 건너뛸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잖아요.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뭔가 계속 덜거덕거리면서 가는 거예요."
딸과 함께 거닐던 갯벌의 흙을 모아
캔버스 위에 새겨넣은 작품.
상처를 덧대고
다시 뜯어내는 반복된 작업에서
말로는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 st-up ▶
노란 물결로 번져가는 깊은 그리움,
변치 않는 그 마음이 바래지 않고
캠버스에 고이 담겼습니다.
'늦은 인사'.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엄마는 12년이 지나서야
딸에게, 또 스스로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 INT ▶ 정정희 / 단원고 2학년 김다영 학생 어머니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걸 이제는 잘 못해요. 어느 누구하고도. 근데 제가 애한테는 뭐냐면 엄마가 꼭 한 번은 다시 만나고 싶다, 말해주고 싶어요."
MBC뉴스 허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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