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항쟁을 이어가던 당시,
시위대를 태운 목포의 한 시내버스가
광주로 향했던 사실이
사진 자료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고립된 광주를 돕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목포 시민들의 기록을
윤소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22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민간인 40여 명이 숨진 그 다음 날.
전운이 감도는 광주의 도로 위를
달리는 시내버스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습니다.
버스에 적힌 이름은 '태원'
목포의 여객버스 회사의 상호명이었습니다.
항쟁 소식을 들은 목포의 시민들이
고립된 채 싸우고 있던 광주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광주로 향했던 겁니다.
◀ INT ▶진지연/목포 5·18 연구소 연구원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도 전체 지역이 함께했던 항쟁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고립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도움을 요청했던 지역들이 모두 항쟁에 참여했다"
목포의 버스는 언론과 여론이 통제되는 상황 속에서도 광주 항쟁의 소식을 전남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당시 목포의 버스 운전기사였던 이문수 씨는
버스를 몰고 목포 시내 곳곳을 돌며 광주의
참상을 알리면서 광장 시위를 이끌었습니다.
목포의 시민들도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 SYNC ▶이문수/당시 목포 '태원 여객' 운전 기사
"주민들이 차를 세워요. 음료수 하며 과자 먹을 거하며 차에다 막 실어주는 거예요. 역전에서 사람들 나눠주라고 해서 그것을 버스에 실어다가 나눠주게 됐어요."
버스가 전한 항쟁의 열기는
목포의 청년과 학생들에게까지 번졌습니다.
그리고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최후 항쟁에 나섰던
시민군이 끝내 계엄군에 진압된 뒤에도,
그날 오후 목포에서는 2만여 명의 시민이
궐기대회를 열었고, 학생들은 다음 날까지
거리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문수 씨는 항쟁 이후
직장에서 해고되고 옥고까지 치렀지만,
그날 버스를 몰았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SYNC ▶이문수/당시 목포 '태원 여객' 운전 기사
"한때는 폭도라는 말이 있어서..지금 와서는 참 자랑스럽고, 다음에 또 이런 나쁜 일이 있다고 해도 목숨 바쳐서 할 겁니다."
1980년, 목포가 남긴 11일간의
항쟁 이후 46년이 흐른 지금.
계엄군의 총칼은 녹슬어 사라졌지만,
그날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의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MBC 뉴스 윤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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