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유가족들은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희생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도
같은 아픔이 되풀이됐는데요.
가족을 잃고도 직접 나서 싸워야 했던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국가의 재난 수습
체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윤소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리포트 ▶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 만에
실종자 유해가 남아 있는 건물 잔해가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삽과 호미를 들고
직접 잔해를 뒤졌지만,
끝내 32명의 희생자는
유해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 SYNC ▶오형수/실종자 가족(1995년 7월 22일 뉴스데스크)
"잘 보존해서 유가족들 오면은 공손하게 받쳐도 억울함이 덜 풀릴 텐데 이게 다 썩은 이 물 자체를 갖다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청소가 끝난 사고 현장과
야적장으로 옮겨진 잔해 더미에서
희생자의 신체 일부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은
재수색 마지막 날까지 사고기 잔해를
하나하나 살피며 희생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참사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2월,
유족들의 요구로 시작된 사고기 잔해 재조사는 현장 전면 재수색으로 이어졌고,
8개월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참사 직후 보름 만에
잔해 수습이 99% 완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재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유해 추정물만
1천8백여 점.
DNA 감식을 통해 희생자 141명의
유해가 확인됐습니다.
◀ INT ▶박인욱/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지난 3월 17일 뉴스데스크)
"척추 같은 큰 뼈도, 갈비뼈 부러진 뼈도 같이 보이고 이러니까, 저런 큰 뼈를 수습을 안 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요."
어렵게 시작된 참사 현장 재수색은
첫날부터 삐걱거렸습니다.
관계기관마다 수색 지침이 달라
현장에 혼선이 빚어진 겁니다.
유족들의 문제 제기로 작업이 중단됐고,
당초 30cm였던 수색 깊이가 최대 1m로
늘어나는 등 수색 방식과 지휘체계가
새롭게 정비됐습니다.
유족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수색 기준까지 바꿔야 했던 상황.
현장을 끝까지 지킨 유족들의 노력은
국가의 재난 수습 체계를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8월 처음으로
'항공기 사고 재난 피해자 유해수습 매뉴얼'을 제정했습니다.
현장 수색부터 유해 인도까지
관계기관별 역할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수습을 종료하기 전에는 유족에게
그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 INT ▶김유진/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온전한 유해 수습뿐만 아니라 정부가 앞으로 참사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희생자들의 존엄을 지키고 더 예우한다는 차원에서 (그간의 투쟁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정부가 뒤늦게 마련한 유해 수습 기준.
하지만 이 새로운 '매뉴얼'은
1년 넘게 추가 유해 수습과 재수색을 미뤄온
국가의 책임까지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MBC뉴스 윤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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