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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의 문화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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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11시 00분

책에서 만난 쉼표

8월21일 김지하 무화과

오늘 《책에서 만난 쉼표》는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 김지하의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

여름이 깊어가는 이맘때면

목포의 골목과 오래된 집 담장 너머로

하나둘 익어가는 과일이 있지요.

바로 무화과입니다.

요즘 시장에서도 청무화과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던데요.

김지하의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과 

그의 등을 가만히 다독이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무화과>  

                                               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청춘을 흔히 꽃 같은 시절이라고 하지만

화자는 자신에게는 꽃 시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친구는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고 있었던 것이라 다독이지요

 

무화과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위로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쩌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라나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